鄭樵夫 (1714~17890)
乞餐
山禽舊識山人面
群籍今無野老名
一粒難分太倉穀
江樓獨倚暮烟生
산 새는 (오래 사귀어) 진작부터 산 사람 얼굴을 알고 있건만
관아 호적에는 아예 들 늙은이 이름이 빠졌으니 (노비 이름을 지웠다네)
큰 창고에 쌓인 쌀 한 톨도 나눠주지 않는구려
높은 다락에 홀로 오르니 저녁밥 짓는 연기 피어 오르네
東湖
東湖春水碧於藍: 동호의 봄물은 쪽빛보다 더 푸른데
白鳥分明見兩三 백조 두세 마리 보일 뿐이라네
彛乃一聲飛去盡 노 젓는 소리에 다 날아가고 *이내彛乃 : 노젓는 소리
夕陽山色滿空潭 해질 무렵의 산빛만 연못에 가득하구나
翰墨餘生老採樵 시인의 남은 여생 늙은 나무꾼일세
滿肩秋色動蕭蕭 지개 위에 내려앉는 가을빛 쓸쓸하여라
東風吹送長安路 동풍이 불어 장안대로로 이 몸을 보내니
曉踏靑門第二橋 새벽에 푸른 문을 밟으니 제이의 다리러라
*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에 따르면 정초부(1714-1789)는 여춘영의 머슴으로 나무꾼이었는데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정다산의 <茶山詩零>에 정약용, 박제가, 이학규, 정초부의 시가 실려 있다.
東湖 동호'는 오늘날 서울 팔당대교 옥수동 주변의 한강이라고 한다
노비의 신분으로 한문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도 정초부는 늘 나무하는 노비였다.
나중에 주인이 면천시켜 자유인이 되었지만 노비 때 보다 더 궁핍하게 살았다고...
장만의 내노라하는 명사들과 시를 교류하며 지내면서도 늘 도롱이 적삼 노비의 차림이었다고
노비(鄭樵夫)에게 글과 시를 가르킨 사람은 여춘영형(呂春永)의 부친인데, 여춘영도 정초부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또, 여춘영 (呂春永 1734-1812)은 정초부가 죽자 樵夫를 애도하는 시를 남겼다.
정초부는 실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초부유고에는 "정초부는 이름이 이재(彛載)다. 여씨가 노비문권(노비증서)을 불사르니 갈대울(지명)에 거주했다" 나온다.
祭樵夫文 초부를 땅에 묻고 애도한 글
黃壚亦樵否 (여보게 설마) 저승에서도 땔나무를 하시겠는가?
霜葉雨空汀 서리 맞은 단풍잎이 인적 없는 물가에 흩날리는구려
三韓多氏族 (자고로 우리나라) 삼한 땅엔 권문세족이 많고 많으니
來世托寧馨 다음 생애에는 그런 가문에 의탁하(여 태어나)시게나
*寧馨 이와 같은, 그와 같은
*黃壚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산다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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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의 시모임이나 한양 西村 中人들의 시회에 초대된 적이 종종 있었으나, 신분의 한계는 오히려 더욱 뚜렸해지고 곤궁조차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의 고닲은 삶의 편린을 짐작케 한다.
江上樵夫屋
元非逆旅家
欲知我名姓
歸問廣陵花
*逆旅 : 나그네를 맞이하는 곳
강 위에 있는 나무꾼의 집은
나그네를 맞는 집이 아니라오.
내 이름을 알고 싶거든
광릉의 꽃에게나 물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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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風吹綠水
花落滿江村
漁舟歸不得
煙雨暗湖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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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坐江邊思
雲山無限情
漁翁歌不盡
日暮歸何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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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風光好
花開滿水東
漁翁歌一曲
不覺日已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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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邊春草綠
花落水中紅
漁翁歌一曲
不覺日已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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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春風暖
花開滿水西
漁翁歌一曲
不覺日已斜
江上春風和
花開滿水東
漁翁歌一曲
不覺日已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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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春風輕
花開滿水南
漁翁歌一曲
不覺日已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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