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깨우쳐 준 좌파의 역사 날조와 우파의 침묵

역사

by nanum* 2024. 3. 9. 10:33

본문

다큐 ‘건국전쟁’이 깨우쳐 준 좌파의 역사 날조와 우파의 침묵   


‘건국전쟁’이 깨우쳐 준 좌파의 역사 날조와 우파의 침묵에 대하여 고합니다.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본 관객들은 감동과 회한과 반성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관객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쳤습니다. 애국가 합창이 울려 퍼진 영화관도 있었습니다. 

한 중학생은 “학교에서 ‘이승만은 X만도 못한 놈’이라고 배웠는데, ‘건국전쟁’을 보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풍요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건국전쟁’은 미국의 위싱톤 대통령과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같이 추앙받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동안 좌파는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 미국의 꼭두각시, 살인마, 반역자로 둔갑시키면서 현대사를 날조하였지만 우파는 침묵하였습니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그 시대 운동권처럼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사망한지 30년이 지난 1995년에도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북한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승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에 대해 잘못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팩트만 보여줘도 좌파들에 의해 날조된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꿔놓은 사례가 있습니다. 나치에 부역한 역사의 진실을 담은 프랑스 영화 ‘슬픔과 동정’입니다.  
‘슬픔과 동정’은 다큐와 픽션이 혼합된 영화입니다.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였던 프랑스 ’비시 정부‘에서 프랑스 국민 대다수가 나치에 부역하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치에 부역한 부역자나 나치에 저항한 저항자가 특별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화 ‘슬픔과 동정’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나치 청산'의 구호가 사라졌습니다. 우리처럼 정부가 ‘반일’이라는 프레임을 만드는 무도한 행위가 없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고,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였던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을 만들었고, 시민방송인 RTV가 방영하였습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죽이기’ 영화입니다. 이승만은 권력을 잡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독립운동 성금을 횡령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국 CIA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CIA자료에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은 미국과 계속 충돌했지만 애국자"라는 내용의 CIA 자료를 날조하였습니다. 

이승만은 플레이보이로 기소를 당한 사람이라며 '하와이 이민국 조서'를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혐의가 없다는 '하와이 이민국 조서'의 다음 페이지 기록은 숨겼습니다. 이승만은 하와이 국민회 돈으로 땅을 매입하여 비리를 행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와이 건설국 자료에는 하와이 국민회가 땅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모든 팩트를 날조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을 만들어 ‘이승만 죽이기’를 하였고, 국민들은 속았습니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죽이기’는 북한의 공작이며, 주사파 세력은 북한의 지령대로 움직였고, 그들은 정신적으로 간첩이었습니다.”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많았는데, 부끄럽지만 저도 당시엔 눈을 감았고 동조했지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왜 북한은 ‘이승만 죽이기’를 할까요? 
‘국가의 정통성‘ 때문입니다. ‘국가의 정통성'이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의미합니다. 이승만이 친일파, 미국의 꼭두각시, 살인마, 반역자라면,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는 국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국가, 없어져야 하는 국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획득한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독립을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미국과 국제연맹의 지도자들에게 일본의 학정을 알리고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만 콕 찍어 독립을 천명하였고, 한국은 독립하였습니다.  

이승만은 1933년 제네바에서 모스크바를 열차로 왕복하면서 공산주의의 실상을 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한반도 공산화 계획을 파탄시켰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북한의 재침공 의지를 좌절시켰습니다. 

반면에 김일성은 독립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한 소련군 대위였습니다. 스탈린은 골수공산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박헌영 대신 조직과 지지 세력이 없는 소련군 대위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하였습니다, 김일성은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와서 “자신이 항일 영웅 김일성 장군"이라며 날조하였습니다. 북한은 한국의 독립과 자유대한민국 건국의 영웅 이승만을 죽이기 위한 공작을 치열하게 추진하였습니다. 북한을 추종하는 좌파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날조하였으며, 우파 역사학자들은 침묵하였습니다. 

‘건국전쟁’이 개봉되자 한 우파 언론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울대 박태균 교수가 날조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습니다. 해방 직후 문맹률이 80%로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기호 1번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기호 2번 이승만이었습니다.
     
침묵은 망국입니다. 이제 행동으로 좌파에 의해 날조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학생들이 더 이상 날조된 역사를 배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 호국총연합회 회장 윤항중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