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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시선 (詩仙) 이백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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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m* 2023. 10. 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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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으로 귀양 온 시선(詩仙)시인 이백, 그는 누구인가

 

이백의 일생은 한 마디로 위대한 시인의 일생이었다. 중국 고인(古人)들은 책을 읽어 벼슬하는 것을 중시했는데 이백은 이 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발군의 시가(詩歌) 재능을 지녔고 또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품었지만 정치의 어둠은 감당하지 못했고 관직에 올라 재상이 될 운명은 타고나지 못했다.

 

그는 61년을 살면서 4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정에 나아갔지만 수도인 장안에 머문 시간은 다 합해도 3년이 채 못 되고 현종이"황금을 하사해 돌아가게 했다."그가 장안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나중에 이린() 진영에 가담해 죄를 지은 것을 보면 이백이 관료사회와 잘 융합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백의 시()는 웅장하고 표일(飄逸)하면서도 호방해서 예술적인 성취가 아주 높다. 주지하다시피 당조(唐朝)는 세계적으로 공인 받은 중국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조대다.  당조는 문화, 정치, 경제,외교 등 여러 방면에서 모두 휘황한 성취를 이뤘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였다.

 

'당시'를 빛낸 별

 

이 당조에서 가장 주목받은 문학적 성취가 바로 당시(唐詩). 진자앙(陳子昻) '초당사걸(初唐四傑)'로부터 시작해 당조에서는 역대로 저명한 시인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성당(盛唐)시기에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잠참(岑參), 왕유(王維)가 있었고 중당(中唐)시기에는 이하(李賀),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가 있었으며 만당(晩唐)시기에는 이상은(李商隱) 두목(杜牧)등이 있었다.

 

후세에 송(), (), ()시기에도 걸출한 시인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율시(律詩)와 고시(古詩)의 전반적인 수준은 당조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는 중국 고시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최정상이었다. 이백은 특히 당조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자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으로 불리는데 그는 중국 낭만주의 시가를 최정상까지 밀어 올렸다. 그와 두보(杜甫)를 흔히 '이두(李杜)’라 병칭한다.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이백의 천여 편 시문(詩文)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꼽자면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 《월하독작(月下獨酌), 《정야사(靜夜思), 《촉도난(蜀道難), 《행로난(行路難),《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 《장진주(將進酒)》 등이 있고 또 이태백집(李太白集)》이 전해진다.

이백은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하나로 흔히 '시선(詩仙)’으로 불린다. 이백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당조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을 조정에 천거하면서 그를 적선(謫仙  역주: 인간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란 뜻, 사람의 능력으로 쓸 수 있는 시가 아니라는 극찬임)'이라 불렀다.

 

송대(宋代)의 저명한 시 평론가 엄우(嚴羽)는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사람들은 이백은 신선의 재주가 있고 장길(長吉), 이하(李賀)는 귀신의 재주가 있다고들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태백이 천선(天仙)의 글이라면 장길은 귀선(鬼仙)의 글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했다.

또 명대(明代) ()의 대가양신(楊愼)은 승암시화(升庵詩話)에서 "이백은 시의 신()이고 두보는 시의 성()이다."라고 했다.

 

독보적인 절구

이백은 평생 수많은 아름다운 고시(), 율시(律詩), 악부시를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이백의 절구(絶句)는 독보적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청나라 강희연간에 조인(曺寅)이 편찬한 전당시全唐詩》에는 이백의 오언절구 86수가 실려 있다. 명나라 때 고병(高柄)이 편찬한 《唐詩品彙》에는 이백의 오언절구 23수가 실려 있고 또 이백을 오언절구의 정종시인(正宗詩人)으로 올려놓았다. 가장 대중적인 당시 시선집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에도 이백의 오언절구 3수가 실려 있다. 이백의 오언절구는 역대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의 많은 작품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盛唐 시인 중에서는 왕유, 맹호연도 오언절구에 능했고 왕창령 등은 칠언절구에 뛰어났지만 오언절구와 칠언절구 양쪽 모두에서 지극한 경지에 이른 시인은 오직 이백 한 사람 뿐이다. 바로 이양빙의 평가와 같았다.

 

진습유 (陳拾遺 역주: 초당 시인 진자앙, 습유는 관직명)가 퇴폐적인 풍조를 다스리자 천하의 문풍이 완연히 한번 변했다. 지금 조정에 이르러 시가의 체제에 여전히 양나라와 진나라 궁체시(宮體詩)의 풍습이 남아 있었는데 공(李白)에 이르러 크게 변했다. 바닥을 쓸어내듯이 완전히 없애버렸다." 《초당집서(草堂集序)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일찍이 《시수(詩藪)>에서 "태백의 오언절구와 칠언절구는 글자마다 신의 경지요. 편편마다 신물(神物)이다."라고 했다. 이백의 절구는 간결하고 명쾌한 언어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진실하고 간결함에도 내포가 풍부하다.

 

여기서 시선 이백의 대표적인 칠언절구(絶句) 한 편을 감상해보자. 이 작품은 이백이 24살때 처음 촉 땅을 떠나며 남긴 시다.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

 

아미산의 달이 반월인 가을

그 그림자 평강 강물 따라 흐르네

밤에 청계(淸溪)를 떠나 삼협(三峽)으로 향하니

그리운 그대 보지 못하고 유주로 내려가네

峨眉山月半輪秋(아미산월반륜추)

影入平羌江水流(영평강강수류)

夜發溪向三峽야발청계향삼협)

思君不見下兪州(사군불견하유주)

 

 

전체 시의 분위기가 명랑하고 언어도 친근한데 읽어보면 발음이 아주 유창하다. 시인은 아미산평강강(平羌江)→ 청계(淸溪, 역 이름) 유주(兪州, 지금의 충칭)→삼협(三峽 순서로 독자들에게 천리 강() 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아미산 달(峨眉山月)'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경물 묘사가 없다. '그리운 그대(思君)' 두 글자를 제외하면 별다른 감정 표현도 없다. 하지만 '아미산 달'이란 이 예술적 이미지가 전체 시를 관통하면서 시 전체에 시인의 장강 여행 체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아울러 절구는 글자 수가 적기 때문에 시공간의 변화를 표현하기가 까다로운데 이백의 시 표현은 시간과 공간을 그야말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스물여덟 자에 불과한 짧은 시에 지명이 5군데나 나와 12자를 차지하는데 명청(明淸 시기 강소(江蘇)의 저명한 시인 왕인주(王麟州)는 이백의 이 시에 대해 "4구절에 지명이 5곳이나 나오지만 고금의 절창(絶唱)으로 꼽히며 전혀 지겹지 않다."고 평가했다.

 

/ 명월(明月)